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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명씨
  • 승인 2024.10.0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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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

◇"너의 이름은 지현이라 했다. 손을 담그면 손끝이 시려울 것만 같은 가을의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만났다. 나는 너의 애달픈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고개를 숙이면 너의 영혼마저 쏟아져 버릴 것 같았다.

지현아! 너는 그때 스물하나의 꽃다운 나이였다. 서른여섯이 되도록 내가 한 일은 무엇일까.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목숨을 나눌 친구가 있었고, 술잔에 담긴 시가 있었고, 그리고 나의 전부를 사랑해준 나의 아내 지현이가 있구나.

이제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나의 친구다.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데려가려 한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창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죽음인지 내 아내의 인내스러운 조용한 발소리인지 이젠 구별조차 할 수 없구나. 네 이름은 지연이라고 했다. 나는 남편이라기보다 변덕스러운 연인에 불과했다. 

나는 알고 있다 내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나를 지켜주는 이가 지현이이며 너의 사랑인 것을.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음악도 끝나고, 술병은 비웠고, 친구들도 떠났다. 지현아, 너를 남겨두고 이제는 내가 간다"

배경모는 1970년대 부산문화방송 음악 프로듀서이자 심야 음악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인기 진행자였으며 광복동 무아음악감상실의 DJ로도 활동했다. 그는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빼어난 문학적 감성으로 당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랬던 그가 1978년, 36세의 한창 나이에 사랑했던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둔 채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 글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다. 배경모는 암투병을 하던 병상에서 애절한 사랑의 시 한 편을 지어 아내에게 주었다.

불의의 병마로 졸지에 남편을 떠나보낸 젊은 미망인은 남편이 병상에서 지어준 시를 무아음악실에서 남편과 함께 활동했던 작곡가 최종혁에게 건네주며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아내에게 바친 눈물겹고 애절한 배경모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래 ‘열애’가 탄생했다. 

◇열애 / 배경모 작사, 최종혁 작곡, 윤시내 노래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댈 향한 그리움.
​ 그대의 그림자에 싸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윤시내는 서울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려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탔고, 초등학교 땐 달리기, 중학교 땐 반 대항 배구 선수로 뛸 만큼 운동신경도 타고났다. 그러나 그녀는 “가수가 아닌 다른 꿈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윤시내는 예고 졸업 후 미 8군 클럽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1970년대 그룹 ‘사계절’의 보컬로 명동 오비스캐빈에서 활동하던 그녀를 눈여겨보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작곡가 최종혁이었고, 윤시내에게 가수 인생을 살게 해 준 사람이었다.

1978년 국제가요제에서 최종혁 작곡의 ‘공연히’로 데뷔한 윤시내는 79년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애’를 열창해 제1회 TBC세계가요제 한국대표로 선정됐다. 그리고 그해 12월 9일 열린 본선에서 대망의 은상을 수상했다. 윤시내가 혼신을 다해 절규하듯 열창한 이 노래 ‘열애’는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명실공히 윤시내를 대표하는 곡이 됐다.

◇언젠가 방송에서 윤시내는 이 노래에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고 했다. 한 여인이 이혼을 결심하고 고속버스를 탔는데 마침 그때 버스에서 ‘열애’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를 들은 여인은 ‘나도 한때 남편과 저렇게 열애를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바로 버스에서 내려 집으러 돌아갔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는 가슴 뭉클한 팬레터를 받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 예전에 어떤 신문에서 재미있는 설문 조사를 본 적이 있다. 노부부들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남편 혹은 아내와 같이 살겠느냐는 설문이었다. 이에 남성의 95%는 다시 살겠다고 했고, 여성의 99%는 절대로 살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오래전 모방송국에서 시골을 찾아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향에서 온 편지’라는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마을 편에 노부부들이 출연하여 퀴즈도 풀고 객지에 나가 사는 자녀들에게 당부의 말도 했다. 그때 사회자가 이들 부부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남편, 아내와 살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들은 하나같이 지금 부인과 살겠다고 대답했고,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저 징그러운 영감탱이하고는 절대로 살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노부부들의 생각이 왜 이렇게 극명하게 갈릴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개 할머니들은 노년에도 자기 할 일은 자기 스스로 하고 산다. 그러나 할아버지들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밥이며 빨래며 등등을 자기 부인이 챙겨주지 않으면 삶 자체가 힘들고 괴로워진다. 영감님들이 자기 마나님을 붙들고 늘어지는 이유는 바로 살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젊어서야 마누라 없이도 잘살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남정네들도 노인이 되어 기력이 쇠해지면 모든 뒤치다꺼리를 마나님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그 엄연한 현실 앞에 다른 여자 타령했다간 괘씸죄에 걸려 밥인들 편히 얻어먹을 수 있을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헛소리할 간 큰 영감님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평생 남편 뒤치다꺼리하다 늘그막에라도 좀 편히 살고 싶은 할머니들은 껌딱지 같이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영감이 귀찮고 싫은 것이다.

◇사람은 절대로 다시 태어날 수 없다. 아무리 웬수같은 남편이고 아내일지라도 상대방으로부터 후생엔 절대로 살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말처럼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없다.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그럴 때 굳이 기분 나쁘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 인간이 그 인간일 텐데 한 번 살아봤으니 나한테 익숙한 사람이 더 낫지 않겠어요? 그러니 다시 만나 살아야지요.”

현명한 아내는 이렇게 말할 것이고, 그 말을 들은 남편은 그가 정녕 지혜로운 남편이라면 죽는 날까지 아내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다. 필자가 윤시내의 ‘열애’를 소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디 고속버스의 그 여인뿐일까. 우리들 부부도 연애 시절에 한 번쯤은 ‘열애’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던 부부가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앙숙이 되어 웬수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열애 시절의 그 추억과 감상은 깡그리 잊은 체 말이다.

그러니 이제 늙어 가는 마당에 아무리 밉더라도 그 시절 생각하며 남은 인생 서로 토닥이고 감싸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억겁의 인연이 있어 부부가 되었을 텐데 짧은 인생 웬수처럼 살다가 웬수가 되어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모르는 남남이 모여 가정을 이루었으니 다툼도 있고 갈등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눈을 감아야 했던 배경모, 그리고 그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그 주인공이 되어 절절하게 노래했던 윤시내!

그 사연과 그 노래를 늘 가슴에 간직하고 서로 양보하고 포용하며 소풍 같은 인생 즐겁게 살다가 애틋한 마음 간직하고 돌아갔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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