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 사이트

주요뉴스
'눈물꽃 소년' 인향만리(人香萬里)에 취하다
상태바
'눈물꽃 소년' 인향만리(人香萬里)에 취하다
  • 양선례
  • 승인 2024.09.25 1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선례∥광양마동초등학교장

'눈물꽃 소년'을 읽었다. 잠들기 전 비몽사몽으로 조금씩 읽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늦은 밤에 몰아서 읽었다. 박노해 시인의 첫 자전 수필 ‘내 어린 날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시인이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을 담은 서른세 편의 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벌교에서 광주까지 아버지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차로 여행한다. 아버지는 중간 기착지에서 나주 배를 열서너 개 사서 깎은 뒤, 같은 칸에 탄 사람 모두에게 조금씩 나눠 준다.

그리고는 마지막 남은 하나를 통째로 깎아 아들에게 건네고, 아버지는 남은 배 깡지를 베어 문다. 단물이 흐르는 큼직한 배 하나를 먹으며 시인은 달콤한 충만감과 함께 자긍심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낀다.

외지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 대신 품 넓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평이(박노해 시인의 본명은 박기평이다.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의 필명이다)를 보살핀다. 할머니는 몸살이 심한 정미소댁에게 찹쌀에 낙지를 고아 먹이고, 젖몸살이 난 젊은 아낙에게는 애저탕을 끓여 평이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책은 방물장수, 당골네, 연이 누나, 수그리 선생님 등 어렵고 고단한 살림이지만 내일은 더 나으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할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자, 소년의 여린 감수성을 감싸 안으며 품어 준 건 이웃이었다.

외롭고 말이 없던 소년의 결핍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이야기를 들어 보지도 않고 매부터 드는 나쁜 어른도 나온다. 그 사람이 교사라서, 책을 읽으면서 조금 부끄러웠다. 누나는 광주, 형은 서울, 엄마는 학비를 벌러 여수로 떠난다. 학교가 끝나도 텅 빈 집으로 가기 싫었던 열한 살 소년은 몇 달에 걸쳐 학교 도서실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쌓인 책이란 책은 모두 다 씹어 삼킨다.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는 소년을 위해 퇴근도 못 하고 늦게까지 도서실 문을 열어 두고 그 소년의 책상에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등불을 놓아 주는 여선생님도 있었다. 시인은 당시의 자신을 두고 ‘어두운 잠실 속 누에가 푸른 뽕잎을 사각사각 먹어 치우듯 사락사락 책장을 먹어 삼켰다’고 표현한다.

그곳에서 그는 운명처럼 강소천의 시를 접하고,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가 쓴 시 한 편을 읽어보자. '손바닥에 불났다/ 월사금이 늦어서/ 산에 길에 단풍 든 날/ 붉은 손바닥을 본다/ 엄니가 볼 것만 같아/ 얼른 주먹을 쥔다'

엄마는 여천 공단에 돈 벌러 가서 1주일에 한 번씩 집에 왔다. 소년은 누나와 어린 여동생과 저녁이면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살아간다. 꿈결처럼 아련하게 저자 특유의 짤막짤막한 문체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특별히 슬픈 장면이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소년의 외로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신기한 책이었다.

시인은 '이 책은 나의 소년 시대 이야기다. 1960년대, 그러니까 불과 두 세대 전의 이야기이다. (중략) 언제부턴가 너무 빨리 잃어버린 원형의 것들이, 인간성의 순수가, 이토록 순정하고 기품 있는 흙가슴의 사람들이 바로 얼마 전까지 있었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슴 시린 나의 풍경이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고흥군 동강면에 가면 일제시대에 지은 면사무소를 단장해 꾸민 '동강 역사 문화관'이 있다. 그곳에는 자랑스런 동강인 셋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박노해 시인이다. 그는 함평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이 지역에 이사해 선린상고(야간)에 진학하기 전까지 살았다.

시인이 1984년 스물일곱 살에 펴낸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됐다. 1994년 군부 정권에서 사형을 구형받아 무기수로 독방에 갇혔다. 7년 6개월 만인 1998년에 석방돼 이후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복원됐으나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 하고 비영리단체 '나눔 문화'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시집 세 권과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옥중 에세이집, 2022년과 23년에는 사진 에세이집과 경구집을 펴냈으나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린 시절을 어찌 이리 세세하게 기억하는지, 또 한편으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그 시절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게 놀라웠다.

이 책이 내게 특별하게 와닿은 건 그는 작년까지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졸업생이어서다. 글에 나오는 노동산, 동강장, 갯벌, 동강공소, 벌교역은 풍경을 그릴 수 있으리만치 익숙하고, 가끔씩 대화에서 듣는 사투리는 정겨웠다.

그는 작년에 100주년을 맞은 모교가 '동강초 100년사'를 발간하자,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시를 써서 보내 주었다. 그를 이름으로만 기억하는, 시를 잘 모르는 내게도 시인의 진심이 전해져서 전문 작가에게 글과 그림을 의뢰하고 작품을 표구해 현관에 걸었다. 책을 읽고 나니 왜 그가 이런 시를 썼는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strong>동강초등학교 현관에  실린 박노해 시인의 시.</strong>
동강초등학교 현관에  실린 박노해 시인의 시.

아이는/ 온 우주를 한껏 머금은 장엄한 존재//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가 누구이고, 왜 이곳에 왔고,/ 그 무엇이 되어 어디로 나아갈지// 지금 작고 갓난해도/ 영원으로부터 온 아이는/ 이미 다 가지고 여기 왔으니//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어주고,/ ‘뜨거운 믿음의 침묵’으로 눈물의 기도를 바칠 뿐이니// 아이야, 착하고 강하여라/ 사랑이 많고 지혜로워라/ 아름답고 생생하여라// 맘껏 뛰놀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네 삶을 망치는 것들과 싸워가라// 언제까지나 네 마음 깊은 곳에/ 하늘 빛과 힘이 끊이지 않기를// 네가 여기 와주어 감사하다 사랑한다(<동강의 아이들아> 전문)

‘화향백리(花香百里,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인향만리(人香萬里,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라고 했다. 박노해 시인의 향기가 진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