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삶을 기적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삶을 사는 데는 두 가지 방법만 있을 뿐. 하나는 기적이란 없는 양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인 양 사는 것이다. 나는 후자를 믿는다"라고 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에 적극 공감합니다. 이 삶이 기적이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광대한 우주 공간에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완벽한 생명체로 살아 숨 쉬며 자유 의지로 살고 있으니! 소멸될 운명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묵묵히 가고 있지만 비관하거나 미리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모든 생명체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환생을 믿거나 윤회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단 한 번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것도 사색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축복, 대한민국이라는 좋은 나라에 태어난 행운, 가난함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얻은 공무원과 교직 생활 40년! 이 모든 결과는 기적이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학급 담임을 충실히 맡아온 덕분에 1500명이 넘는 제자를 길러낸 그 오랜 세월도 축복이 분명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척박해졌다고 해도, 바깥 세상에서 선생님을 흔들어도 결코 기죽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며 이 자리에서 당당한 선생으로 살아온 길. 평생 배움의 道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한 제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걸음을 향해 가는 중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듯, 교직도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저의 진심과 다르게 달을 가리킨 내 손가락만 보고 나를 오해했던 사람 때문에 아팠던 순간도 돌이켜 생각하니 더 고운 열매를, 진주를 만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오히려 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거쳐간 제자 중 단 한 사람도 문맹자를 만들지 않으려고 매달렸던 순간들이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1학년 때 한글을 다 깨우치지 못한 제자는 2학년이 되어서도 아침마다 내 교실로 오게 해서 책을 읽어주고 다독이며 글을 읽어내는 기쁨을 찾게 했던 일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수학급이 없던 시절 6학년을 담임할 때 만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반 학기만에 한글을 다 깨우쳐 음악 책을 보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그날의 희열은 어제 일처럼 감동을 안겨줍니다.
초임지에서 만난 4학년 아이들은 48명 중에 15명이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늦가을에 만난 그 아이들을 데리고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어주고 읽게 하고 받아쓰기를 시키며 글을 알게 하던 그 가을은 교직을 시작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아픈 손가락이었던 그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순간들이 어제 일처럼 또렷한 까닭은 아직도 문맹을 걱정하는 현실 때문입니다.
영리한 학생을 가르치며 받았던 그 많은 상장과 등급 표창보다 더 귀한 진주들입니다. 4학년 때 내 무릎에 앉혀놓고 한글을 깨우친 초임지의 제자는 아직도 그날의 추억을 새기며 행복한 전화를 걸어옵니다. 성공한 제자들이 수십 년 무심하게 무소식을 희소식으로 알고 지내는 것에 비하면 아들처럼 따스한 목소리가 참 반갑습니다.
문맹은 뜻 있는 선생님이 있는 교실이라면, 관심을 가진 학교장이 있는 학교라면, 어떻게든 탈출구를 마련해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근무했던 담양금성초(교장 최종호)에는 단 한 명의 문맹자도 없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늦게 글을 깨친 아이들을 위해서 독해력 향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력 향상에 주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글을 모르는 아이들보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아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가장 하층부에 자리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피해자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파괴된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고 울던 아이들은 이제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향해 분노의 불길을 태우고 있습니다. 가난과 가족의 부재는 그 아이들에게서 사랑 받을 권리와 보호 받을 안식처를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아픈 손가락입니다.
이는 그동안 억눌렸던 목소리, 사회의 아픈 현실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과도기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쌓인 적폐 현상이 학교도 결코 예외일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분노를 표출하는 그들 가슴에 응어리진 진짜 목소리와 아픔을 들여다 보려는 노력이 먼저일 때 해결할 방책도 분명히 있다고 확신합니다.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 과격하고 비인간적인 겉모습만 보고 낙인을 찍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살고 싶다는 언질을 그렇게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을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탓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는 방법을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못했음을 시인하고 이제부터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저에게 남아 있는 교단의 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고 빠르던 그즈음, 더 빨리 출근하고 더 많이 일하고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 보던 아침들. 석양이 아름다운 해넘이처럼 마지막을 향해가는 교실의 하루하루가 어느 때보다 귀하고 소중했던 순간들! 선생님에게 대들고 함부로 말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예서제서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목소리. 시골 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걱정이 많던 시절.
아침독서 시간에 도서관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눈맞춤을 하며 웃어주는 작은 몸짓 하나만으로도 닫혀 있는 아이의 가슴을 열게 하는 시작임을 믿습니다. 말은 하지 않고 엄지척을 해주는 손짓 하나만으로도 관심을 표현해 줄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걱정해주고 아끼고 있음을 알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많아지기를!
아파하는 아이들이 내지르는 분노의 화살이 도와달라는 목소리라고 해석해주시기를! 환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마음이 다친 아이들에게 한 번 더 눈맞춤을 하는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교직은 선택을 넘어 아름다운 소명임을 뒤늦게 깨달았던 무명교사의 고백입니다. 그 소명의 시작과 끝은 오직 '사랑'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