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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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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무명씨
  • 승인 2024.09.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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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

❐ 일반에서 자주 사용하는 불가(佛家)의 용어 중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있다. 이는 화엄경의 중심사상을 나타내는 말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 즉 ‘세상사 마음먹기 달렸다’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흔히 행복과 불행이 상황에 따라 또는 환경에 따라 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매우 큰 착각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어떠한 상황도 자신을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마음만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주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법륜스님은 이런 예를 들었다.  “내가 달을 보고 슬픈 감정을 느꼈다고 가정하자. 그럼 달이 나에게 슬픔을 준 것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 슬픈 것인가? 나의 마음이 슬픈 상태이니 마음에 비친 달도 슬프게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을 결정하는 것은 마음이지 달이 아닌 것이다.”
  
‘괴롭다’, ‘행복하다’ 등의 느낌은 단지 상황에 따라 일어나는 내 마음의 움직임일 뿐이다. 행복도, 불행도, 사랑도, 미움도 결국은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니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일체유심조의 중심사상인 것이다.

넓게 쓰면 온 우주를 다 담을 수 있지만 좁게 쓰면 바늘 하나 꽂을 구멍도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따라서 가슴 속에 자리한 이 주머니를 어떻게 쓰느냐, 무엇을 담느냐는 것은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몫인 것이다.

❐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다. 태어날 때부터가 그렇다.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 어떤 사람은 건강한 몸으로,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게.

이런 일은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불평할 수도 없다. 불평하고 원망해봤자 돌이킬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자신의 인생만 낭비할 뿐이다. 대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가진 사람은 더 갖지 못해 불만이고 건강한 사람은 더 건강하지 못해서 불평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 운명, 직업, 환경, 상황 등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는가를 나타내는 척도가 만족지수다. 이를 ‘고통지수’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만족도가 높으면 고통이 낮아지고, 만족도가 낮으면 고통이 높아지니 고통은 만족에 반비례해서 나타난다. 

그런데 사람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1에서 10까지 10단계로 분류했을 때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전문가가 고통지수를 매겼다면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점수를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모두의 심리적 고통지수는 10으로 수렴된다. 그 말은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고통의 상태를 최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예를 하나 들어보면 이를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견교사 A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징계를 받는 바람에 승진대상에서 영구 퇴출되었다. B는 정기인사에서 고위직으로의 승진을 노렸으나 경쟁자에게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 경우에서 승진 기회를 영구히 박탈당한 A에 비하면 앞으로 또 기회가 있을 B의 경우는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A와 B가 맞보는 심리적 고통지수는 똑같이 최상위인 10에 이른다. 즉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을 항상 최고 등급에 위치시킨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까. 바로 마음이다. 절대로 남들과 비교를 거부하는 그 이기적인 마음이 자신을 항상 고통의 최상위에 앉혀 놓는다. 그리고 그 고통과 벗하면서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스스로 자청하여 받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 정리해 보면 이렇다. 세상은 원초적으로 불공평하다. 그런데 신은 인간에게 만족이란 단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만족할 줄 모른다. 그것은 모두가 불평지수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이 불평지수가 높건 낮건 사람들은 자신의 심리적 불평지수를 최고점으로 인식한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공평하다. 이처럼 불공평을 공평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 갈무리를 잘하지 못하면 행복과는 담을 쌓고 불행과 한집살이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행복한 인생, 만족지수 높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마음인 것이다.

❐ 언젠가 ‘사랑방편지’에 소개되었던 아래 글은 마음이 길을 잃고 흔들릴 때 많은 도움을 준다. 

"11층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다. 떨어지면서 보니 가까이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10층에서는 금슬이 좋고 화목했던 부부가 싸우는 게 보였고, 9층에서는 밝고 유쾌하고 잘 웃던 남자가 우는 게 보였고, 8층에서는 남자들과 말도 하지 않던 여자가 바람피는 게 보였고, 7층에서는 건강하기로 소문났던 여자가 약 먹는 게 보였고, 6층에서는 돈 많다고 자랑하던 남자가 일자리 찾는 게 보였다.

5층에서는 듬직하고 정직했던 남자가 여자 속옷 입는 걸 보았고, 4층에서는 닭살 커플로 엄청 사랑했던 연인이 헤여질려고 싸우는 걸 보았고, 3층에서는 남녀관계가 복잡하다던 할아버지가 혼자 보내는 걸 보았고, 2층에서는 이혼하고 남편을 욕했던 여자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걸 보았다.

11층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사람마다 말 못할 사정과 어려움은 누구나 다 있었다. 내가 보았던 사람들이 지금 나를 보고 있다. 그들도 나를 보며 자기는 괜찮다고 자기위안을 하고 있을 거다.

알고 보면 사람들의 삶은 별반 다를 게 없다. 누구나 말 못할 고민은 있다. 집중하면 커지지만 돌아서면 그만이다. 가까이 보면 비극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당신의 행복을 책임질 사람은 바로 당신밖에 없다."   

세상에 어려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자신만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신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이 글은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특히 ‘집중하면 커지지만 돌아서면 그만이다’라는 글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통스러울 때마다 깊이 새겨야 할 명언이다.

❐ 행복은 반드시 타워 팰리스 48층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고급 승용차 뒷자리에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행복은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이름 모를 카페에서 마시는 한 잔의 모카커피에 녹아 있을지도 모르고,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운 좋게 당신 차지가 된 빈자리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고, 밤새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싸한 새벽공기에 스며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 (좋은 글 중에서)》

그렇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속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 행복을 잡으려면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다면 노력을 해야 한다.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듯 내 마음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간수할 것만 간수해야 한다. 내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과 칭찬의 말들은 간직해도 좋지만 필요도 없는 비난이나 고통은 쓰레기나 잡동사니 치우듯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행복과는 결코 만날 수 없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말했다.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 먹은 만큼 행복하다"고.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수고한 자신한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지금부터 행복하기로 마음먹자. 그러면 행복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명절에 우울했던 사람들, 뜻을 이루지 못해 실망했던 사람들, 그리고 희망을 출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내 사랑하는 후배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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