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수 늦깎이 스타 현철 씨가 지난 7월 15일 유명을 달리했다. 현철 씨의 목소리에 묘한 찰기가 있어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현철 씨의 진정이 내 가슴에 찰싹 달라붙는다. 특히 위로라도 받아야 될 상황이 오면 누구 노래보다도 현철 씨 노래가 나를 오지도록 위로한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나 ‘내 마음 별과 같이’, ‘싫다 싫어’ 같은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위로가 제 발로 걸어와 저절로 스며든다. 20년이 넘는 오랜 무명생활, 따뜻하고 감칠맛 나는 음색, 부산 특유의 구성진 사투리로 쏟아내는 입담, 이 모든 것이 현철 씨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유독 현철 씨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어 나는 오래전부터 현철 씨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마치 판소리 마냥 꺾어 감칠맛이 그만이고, 끊기지 않고 쫄깃하게 이어지는 떨림 창법은 노래를 풍성하게 한다. 그의 목소리는 황톳빛을 닮아 온화하다 못해 따뜻하고, 천장 구석까지 가득 찰 것 같은 발성으로 노래가 갓 만들어낸 인절미 마냥 쫄깃쫄깃하다.
노랫소리에서 정이 솟아나고 뜨거운 눈물이 묻어난다. 황톳빛을 연상시키는 따뜻한 음색, 감칠맛 나는 창법, 그리고 결코 고프지 않은 성량이 현철 씨 노래의 특징이다. 여유 넘치는 무대 매너와 좌중을 휘어잡는 구수한 부산 사투리 입담은 나 같은 트로트 애호가에게 주어지는 덤이다.
현철 씨는 일제 강점기인 1942년 7월 29일 경남 김해군 도도리 월포마을에서 강상수(姜祥秀)로 태어나 끊임없이 음악에 도전했고 연속되는 역경을 극복해 냈다. 부산 동아대학을 자퇴하고 입대해 전역한 후 노래를 향한 열정을 숨길 수 없어 27세 때인 1969년 ‘무정한 그대’로 데뷔했다. 그러나 그것은 20년이 넘는 인고의 세월인 무명생활의 출발이었다.
그에게 있어 노래는 숙명이나 다름이 없기에 피해 가지 못하고 특유의 집념으로 고난을 견뎌내며 끝내는 대한민국 트로트의 상징이 되어 전설이 됐다. 무명시절에 작곡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시작으로 ‘사랑의 이름표’, ‘아미새’를 직접 작곡하기도 했는데, 1988년부터 5년간 연속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에는 ‘봉선화 연정’으로, 1990년에는 ‘싫다 싫어’로 2년 연속 KBS 가요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급기야 2020년에는 제1회 트롯어워즈 트롯 100년 가왕상을 수상해 정점을 찍었다.
그는 2007년 공연 리허설 중 추락 사고로 갈비뼈 3개를 다쳐 경추 디스크 증상이와 2018년부터는 허리를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었고, 2020년 11월 16일 가요무대 출연을 끝으로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금년 5월 뇌경색으로 응급실 입원, 7월에 의식불명 상태가 되고, 15일 혜민병원에서 82세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최초로 대한민국 가수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경기도 광주시 능평동 휴 추모공원 납골당에 안장됐다. 그는 작년 2023년 12월 죽음이라도 예견한 듯 TV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 현철 특집에 직접 출연하지는 못하고 편지를 보내 ‘잘 생기고 예쁘고 정말로 노래 잘하는 아들, 딸 같은 후배들이 저의 가요제에 출연해 한바탕 걸판지게 놀아준다니 너무나 기쁘고 가슴이 벅찹니다. 잊혀져가는 현철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현철 씨의 음악과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과 역경 극복의 연속이었다. 그는 긴 무명생활을 견뎌내고 ‘사랑은 나비인가 봐’,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아미새’, ‘들국화 여인’과 같이 주옥같은 히트곡을 남기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노래는 트로트 민초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으며 앞으로도 그의 노래는 우리 곁에 남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평소 느긋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성격이 밤하늘에 잠든 뭇별 같은 노래를 불후의 명곡으로 풀어냈고 자신을 불멸의 스타로 만들었으며, 민초들의 경제력 향상과 함께 발전한 한국 트로트의 역사 그 자체가 됐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더 이상 참지 못할 그리움을 가슴 깊이 물들이고’ 속에 머금어진 정한을 누가 있어 현철 씨 보다 더 절절하게 풀어낼 수 있겠는가. 곡의 실질적 주인이 원곡자가 아니라 그 곡을 가장 절절하게 풀어낸 가수라고 생각한다면 현철 씨는 ‘봉선화 연정’의 원곡자이자 실질적 주인이다.
구성진 꺾기 창법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부른 그의 대표곡 ‘봉선화 연정’은 현인 씨가 살 떨리게 고아 낸 ‘신라의 달밤’, 이미자 씨가 처절하게 녹여낸 ‘동백 아가씨’와 함께 오래도록 대한민국 트로트 가요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한 시대를 같이 살고 현철 씨의 노래에 울고 웃던 한 사람으로서 좋은 곳에 가셔 더 이상 아프지 말길 빌면서 당신의 노래 ‘내 마음 별과 같이’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시길 당부드린다.